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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혼

남편은 슈퍼맨이 아니다

많은 여자들이 페이스북,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즐겨한다. 남들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속속들이 안다. 이는 결코 남편들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다. SNS가 많은 남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. 이유는 다른 친구들이 올린 사진들을 보며 아내의 눈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. 몇 년 전만 해도 없던 ‘태교 여행’이라는 용어가 생겼다. 예전에는 임신한 상태에서 해외여행을 가면 생각이 없는 부모라고 손가락질 받았지만 이제는 태교 여행은 임신한 부부가 가는 여행이 되었다. 어디 이뿐인가?

1년에 한 번 해외여행 가는 것은 연례행사가 된지 오래이다. 호텔, 맛집,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. 기록을 남긴다는 명분하에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. 그리고 데이트한 인증 샷, 생일 때 받은 선물을 올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.

남편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. 아내가 물어보는 정치, 사회, 경제에 대해 척척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. 직장에서는 고액 연봉을 받고 승진도 잘 해야 한다. 그러면서 퇴근은 빨리고 하고 주말 근무는 절대 안 된다.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줘도 피곤치 않는 체력과 육아달인이라는 소리를 들 수 있을 만큼 아이를 잘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.

가족을 위해 맛있는 저녁 한 끼 만들 수 있는 요리 실력과 아내가 차려준 밥이 맛이 있든 없든 군말 없이 먹을 수 있는 먹성이 있어야 한다. 음식물쓰레기 버리기, 화장실 청소 등 지저분한 일은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센스도 있어야 한다.

요즘 아내들이 원하는 남편은 슈퍼맨에 가깝다. 이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디서 들은 남편, SNS에 본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. 대한민국에서 괜찮은 남편으로 살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. 좋은 아빠 노릇은 괜찮은 남편이 되기 보다 더 힘들다.

어느 날 우리 집에 이상한 손님이 나타났다. 나이도 어린 것이 벌써 왕 노릇하기 시작했다. 바로 5살 된 아들이다. 부성애 따윈 전혀 없던 내가 아들과 5년을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그 놈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. 하루 종일 안보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. 퇴근하고 집 앞에 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. 문을 열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아들을 보면 행복하다. 안고 깨물고 뽀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애정행위는 다 한다.

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. 20~30분 놀아주면 급 피곤해진다. 아들놈은 붕붕이 놀이, 인형 놀이, 역할놀이 등 계속 놀아달라고 조르지만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. 누워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싶다.

퇴근하고 집에 오면 남아 있는 에너지가 거의 없다. 직장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. 성의 없게 놀아주면 아들놈은 “아빠 일어나! 아침이야!”라고 말하며 날 일으켜 세운다. 아내가 병원 실습으로 없는 날 아들과 단 둘이 키즈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. 3시간동안 아들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“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” 하는 생각이 들었다. 책을 읽고 싶어 들고 왔지만 펴보지도 못했다.

나 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들이 하품을 하며 한손에는 휴대폰을, 한손에는 자녀 손에 이끌려가는 모습이 웃프게(웃기고 슬프게) 보였다. 저 부모들도 자식만 없었으면 자기들끼리 데이트 하러 놀러 갔을 텐데... 하는 생각이 들었다. 아이가 노는 모습 찍어주고, 같이 역할놀이 해주고, 우는 아이 달래주고, 밥 한 숟가락이라도 어떻게든 먹이려는 부모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.

나는 안다. 이 아이는 금방 자라 나중에는 내가 아무리 놀아달라고 해도 친구들이랑 논다고 놀아주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을. 그걸 알기에 지금이라도 마음껏 놀아주고 싶다. 마음만큼은...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. 축구 2시간하는 것보다 아들이랑 30분 놀아주는 게 더 피곤하다. 똑같은 몸인데 뭘 하느냐에 따라 피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.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마음처럼, 생각처럼 쉽지 않다. 마음은 청춘인데 이렇게 나이가 들구나...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.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정말 어렵다.

 

우연히 김건모 ‘남자의 인생’이라는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.

어찌 이리도 아빠의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싶다.

얼마나 걸어왔을까 내 삶들을 버린 채로

오직 아내와 자식만 생각하며 바쁘게 살아온 길

얼마나 지나쳤을까 내 젊음의 초상들은

벌써 머리가 하얗게 쉬어가고 잔주름이 늘어가

한잔의 소주잔에 나의 청춘을 담아 마셨다

매일 쳇바퀴 돌듯이 살다보니 내 청춘이 가버렸다.

오늘도 난 비틀대며 뛴다. 지친 하루의 끝자락에서

아직 나만을 믿고서 기다리는 가족을 가슴에 안고

아버지란 강한 이름 땜에 힘들어도 내색 할 수 없다

그냥 가슴에 모든 걸 묻어두고 오늘도 난 술 한잔에

내 인생을 담는다.

어디쯤 와있는 걸까 내 남겨진 삶 들 속에

한번 뒤돌아 볼만한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길

어디쯤 서있는 걸까 내 지금의 모습들은

정말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다 남자의 인생일까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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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사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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